국제공용어-에스페란토

에스페란토 [Espera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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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태생 유대인 L.L. 자멘호프가 창안한 세계공통어. 언어를 통한 세계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1887년에 발표되었다. 1982년 현재 세계에스페란토협회 회원은 94개국, 3만 6624명이며, 학습자 수는 이의 20배 정도로 보고 있다.

역사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서는 교통의 발달 등으로 일반서민의 활동범위가 넓어지고, 프랑스어 등 상류사회의 공통어나 지역적인 민족어를 넘어서는 국제공통어의 필요성이 나타났다. 자멘호프가 태어나고 자란 동폴란드의 비알리스토크는 그 무렵 러시아령이었고, 유대인과 독일인의 이민도 많아서 민족 사이의 분쟁이 잦은 복수언어지역이었다. 어느 한 민족의 언어도 아닌, 배우기 쉬운 공통어를 고안하고자 한 자멘호프는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1887년 바르샤바에서 《국제어(Lingvo Internacia)》를 펴냈다. 러시아어로 쓴 에스페란토 교본인데, 이때의 자멘호프의 필명인 <에스페란토박사(D-ro Esperanto;희망하는 사람이라는 뜻)>가 언어명으로 되었다. 그 뒤로 100가지가 넘는 개선안과 전혀 다른 체계의 국제어들이 제시되기도 했으나, 에스페란토를 대신할 만한 국제어는 없었다. 나치스와 스탈린체제 아래에서는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이 탄압을 받기도 했으나, 제 2 차세계대전 뒤에 다시 움직임이 활발해져서 국제교류와 평화운동에 이바지하고 있다. 영어·러시아어 등의 강대국 언어가 국제어로서 소수민족들에게 강요되는 상황을 에스페란티스트(국제어 사용자)들은 날카롭게 비판하고, 각 민족언어의 평등한 위상(位相) 정립을 호소하고 있다. 에스페란토의 상징 표지(標識)는 초록색 별이다.

특징
문자는 로마자를 쓰고, 로마자 1자는 1음소를 나타낸다. 악센트는 뒤에서 두번째 음절로 통일되어 있다. 명사의 복수형, 동사의 시제와 명령형·가정형 등의 어미도 예외없이 규칙적으로 이루어진다. 명사의 성(性)이나 동사의 인칭변화는 없다. 명사에 주격(主格)·여격(與格)의 2가지 격이 있기 때문에 어순(語順)이 고정되지는 않지만, 기본어순은 <주어-동사-목적어-보어>이다. 전치사와 관계대명사로 문장의 각 성분을 가름한다. 문형(文型)은 슬라브어적인 특성을 띤다. 어휘는 라틴어·프랑스어·독일어 등에서 취한 어근에 간명한 품사어미(品詞語尾)를 붙인다. 원자(原子)를 뜻하는 여러 언어 공통의 어휘 < atom>을 어근으로 받아들이고, 여기에 명사어미 /-o/를 붙인 < atomo>를 에스페란토 명사 <원자>로 하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a/, /-n/을 각각 형용사어미·대격어미로 하여, < atoma> < atomon>은 <원자의> <원자를>이 된다. 이와 같이 어근(또는 형태소)이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에스페란토는 언어학적으로 교착어(膠着語)로 분류된다. 접두·접미사가 40개 이상이나 되어 하나의 어근에서 수많은 어휘가 파생된다. 1970년에 나온 《그림이 있는 에스페란토대사전》에는 1만 4000 이상의 어근이 실려 있다. 그밖에 각종 전문용어집도 있다.

국제운동
세계에스페란토협회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 본부가 있다. 1954년 이래 유네스코의 자문기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각 나라의 정부가 배제된 세계조직의 하나이다. 이 협회가 주최하는 세계대회에는 해마다 2000∼4000명이 모인다. <도시대표 네트워크>라고 하는 국제정보서비스망도 가지고 있다. 그 밖에 평화운동가·과학자 등의 분야별단체도 약 40개 있다. <패스포트 서비스>라고 하는 국제민박제도(國際民泊制度)도 있다. 에스페란토가 가장 활발한 지역은 헝가리·폴란드 등의 동유럽 여러 나라와 유럽공동체(EC) 여러 나라이다. 동유럽 여러 나라는 모두 소수민족어를 쓰는 나라들인데, 옛 소련에 대한 저항감도 한몫을 하여 사회적으로 에스페란토에 대한 관심이 높다. 아시아에는 한국·중국·일본 등지에서 활동이 활발하다.

문화
서적·잡지의 출판활동이 주류를 이룬다.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라디오방송은 세계적으로 13국(局)을 헤아리며, 바르샤바·베이징[北京〕·빈 등지에 개설되어 있다. 유고슬라비아의 자그레브에서는 에스페란토 국제인형극축제가 해마다 열린다. 창작활동도 활발하여 에스페란토 시인으로 헝가리의 K. 칼로차이가 유명하다. 영국의 W. 올드는 서사시 《요람의 백성》을 에스페란토로 썼다. 주요 잡지로는 정치·문화의 새 소식을 싣는 월간 《모나토(Monato, 벨기에 간행)》, 여성운동관계의 계간(季刊) 《성과 평등(Sekso kaj Egaleco)》 등이 있다.

한국
한국의 에스페란토는 <고종의 에스페란토연구>에서 시작되어 1920년 김억(金億)이 서울 YMCA에서 협회를 창립함으로써 그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23∼24년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고정란을 두고서 에스페란토 연구논문들을 게재하였고, 23년에 김억과 신봉조(辛鳳祚)가 학습서를 만들었다. 이후 홍형의(洪亨義)·정사섭(鄭四燮)·석주명(石宙明)·백남규(白南奎)·나원화(羅元和) 등이 그 연구에 참여하였고, 안우생(安偶生)은 중국에서 루쉰[魯迅〕문학선집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38년부터 시작된 일제의 탄압으로 그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57년 대구에서 <한국에스페란토학회>가, 63년 서울에서 <한국에스페란토협회>가 구성되었다가 75년에 통합되어 오늘에 이른다. 1969년 7월, 이재현(李在賢)이 쓰고 김교영(金敎暎)이 감수·완성한 《에스페란토-한국어사전》이 있고, 김윤식(金允植)은 에스페란토문학을 연구, 근대한국문학사의 테두리 안에 합류시킴으로써, 독보적 분야를 개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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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산 | 2004/09/16 09:39 | 신비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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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파란하늘은하수 at 2005/03/27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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